엠파스 토탈 사커에 존 듀어든이라는 영국인 칼럼니스트가 있다. 블랙번 서포터인 영국인이지만, 한국 K-리그와 한국 축구에 아주 애정을 갖고 멋진 글을 써주시는 분이다. 이 분이 월드컵을 앞두고 모국인 잉글랜드 대표팀에 대해서 썼던 글이 있다.
마지막 문장 - 그러나 대다수의 잉글랜드인들은 표현을 안 할 뿐이지 마음 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다. 잉글랜드가 챔피언이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 이 압권이다. 나도 90년 월드컵 이후, 잉글랜드 대표팀의 팬이고 이번에는 챔피언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사실 나도 마음 속으로는 알고 있다. 잉글랜드 선수들의 네임 밸류는 최고 수준이지만, 그것만으로 우승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번에도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등의 다른 팀에 비해서 결코 낫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이 경기는 그런 나의 생각에 확신을 가져다 주었다. 현재 잉글랜드는 챔피언의 폼은 확실히 아니다. 그건 루니가 돌아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본적으로 베컴 - 램파드 - 제라드 - 조 콜의 미드필드진은 완벽하지도 않거니와, 개개인의 능력을 최대한 살려주는 조합이 아니다. 거기다가 이 조합에 대한 대안도 마땅치 않다. 문제는 저 조합이 현재 잉글랜드 국가 대표 최고의 조합이라는 것이고, 더 문제는 저 조합으로는 좋은 팀이 구성이 안 된다는 것이다.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첫번째 게임에서도 모두를 놀라게 하더니, 두 번째 이 게임에서 첫 게임의 성과가 운이 아니었음을 증명했다. 단단한 수비 조직력과 근성을 보여주었고, 간간히 나오는 역습도 꽤 위력적이었다. 아약스, 네덜란드 대표, 레알 마드리드 등을 거친 노련한 레오 베인하커르 감독의 역량이 이 두 경기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아직은 1무 1패로 탈락한 것이 아니니만큼, 마지막 파라과이 경기를 잘 치뤄내서 이 인구 100만명의 작은 나라가 본선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것을 한 번 보고 싶다.
그리고, 사실은 경기 후에 알게 된 것이지만 크라우치의 첫번째 골은 아주 치졸하고 해서는 안 되는 파울이었다. 이 골에서 크라우치는 수비수 브렌트 산초의 긴 머리를 잡아 당겨서 방해한 후 자신은 키를 이용해서 헤딩을 넣었다. 이 골이 결국 계기가 되어서 잘 싸워오던 트리니다드 토바고는 무너졌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골이는데, 실망이다. 리버풀의 선수라서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아쉽다.
그리고 제라드의 두 번째 골. 그건 멋있었다. 지난 FA컵을 비롯해서, 지난 챔피언스 리그의 골들까지, 중요한 순간에 멋진 골을 많이 만들어내는 제라드는 내가 잉글랜드에서 가장 좋아하는 선수이기도 하고 가장 기대하고 있는 선수이기도 하다. 잉글랜드가 만약 우승을 한다면, 그건 틀림없이 제라드의 발 끝에서 극적인 골이 한 두개 정도는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골들을 예감하게 만드는 멋진 첫 골이었다. 바라건대 2골만 더 해주었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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